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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스위치 디펜스와 미스매치, 그리고 모리볼

NBA 넋두리

by REDIAN 2020. 7. 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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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구분의 불분명화

최근 NBA의 트렌드는 포지션 구분의 파괴이다. 서로 사이즈가 다른 선수를 붙이는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의 공격에서도 수도 없이 많은 스위치 디펜스(포지션이 서로 다른 선수끼리 매치업되는 것)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자신의 마크맨을 위주로 마크하던 이전과는 달리 여러 포지션을 막을 수 있는 범용성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는 자기의 정해진 포지션만을 수비하는 선수는 정말 드물다. 루디 고베어같은 골밑을 우직하게 지키는 림프로텍터 정도를 제외한다면 최소 두 개의 포지션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스위치 오펜스&디펜스를 극대화한 팀이 바로 휴스턴이다. 휴스턴은 흔히 마이크 댄토니&대릴 모리&제임스 하든으로 이어지는 3명의 혁명가들이 스몰 라인업의 정수를 보여주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 댄토니는 피닉스 선즈 시절 "7 seconds or less"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 농구를 선보였던 감독이고, 모리는 비선출이지만 3점 라인과 자유투 라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모리볼"을 유행시킨 단장이다. 그리고 제임스 하든은 댄토니와 모리의 철학을 코트 위에서 유감없이 구현할 수 있는 천재 볼핸들러이다. 본래 하든은 지금처럼 기괴할 정도로 미드레인지 점퍼를 기피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시절은 물론이고, 휴스턴 로키츠로 온 초기에도 중거리 스텝백 점퍼는 하든의 쏠쏠한 무기 중 하나였다. 성공률도 준수했다. 그렇다면 왜 하든은 지금처럼 미드레인지 점퍼를 극도로 자제하게 된 것일까?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3점슛 시대의 도래

미드레인지 점퍼는 농구가 생겨난 초기부터 있던 공격법이다. 센터들은 집요하게 골밑을 파고들었지만 상대적으로 골밑에서의 경쟁력이 약한 가드들은 미드레인지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3점슛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골밑슛의 가치가 더욱 높았기 때문에, 역으로 상대적으로 수비가 덜한 미드레인지는 가드들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3점슛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3점슛은 쏠쏠한 옵션임에는 분명했지만, 지금과 같이 잘 던지지 못하는 선수들이 도태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센터는 물론이고 포워드 중에서도 3점 옵션 자체가 없는 선수들이 허다했으며, 간혹 앤트완 워커와 같이 아웃라이어 수준으로 3점을 많이 던지던 선수들은 난사라는 오명을 얻기 일쑤였다. 가드 중에서도 3점을 옵션으로 장착한 선수는 많았지만 그들 중 3점이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레지 밀러, 레이 앨런뿐이다. 3점은 전문 슈터들의 영역이었으며, 불스 왕조의 일원인 스티브 커나 휴스턴 리핏의 일원인 케니 스미스 등이 그 예이다. 즉 3점은 "들어가면 좋지만, 많이 쏠 경우 기본적으로 성공률이 낮은 슈팅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라는 것이 당대 농구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이다. 특히 빅맨은 골밑에서 활약하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3점을 장착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3점 트렌드가 변화하며 이런 상황은 크게 반전되었다.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등을 필두로 한 골스 왕조가 2010년대를 지배하면서 3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커리는 3점으로 단순한 스타를 넘어 슈퍼스타가 되었다. 백투백 MVP를 수상하였으며, 2015-16 시즌에는 역대 최다승인 73승 9패를 이끌기도 했다. 3점이 메인인 팀은 우승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유기적인 패스 게임 + 스페이싱을 통해 3점슛 농구를 구사했다면, 휴스턴과 클리블랜드는 그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3점슛 농구를 구현한 팀들이다. 먼저 클리블랜드는 돌파 후 킥아웃 패스를 극대화한 팀이다. 르브론 제임스와 카이리 어빙이라는 특급 볼핸들러들은 최상급 돌파력을 지닌 선수들이다. 이들의 돌파는 자연스레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고, 외곽 슈팅을 견제하던 선수들도 그들의 폭발적인 돌파를 견제하기 위해 달려온다. 그렇게 더블팀 혹은 트리플팀이 붙으면 자연스레 외곽의 3점 슈터들은 노마크 찬스가 생기고, 이들에게 패스를 뿌리면 자연스레 3점 라인 폭격이 가능하다. 클리블랜드는 J.R. 스미스, 카일 코버, 이만 셤퍼트, 채닝 프라이 등 정상급 3점 슈터를 다수 보유한 덕분에 양궁 농구를 할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3점슛 성공 기록도 클리블랜드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이기도 한 휴스턴은 극단적인 볼핸들러 + 미스매치 중심 농구를 구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골든스테이트와 클리블랜드를 융합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골든스테이트의 핵심인 커리가 3점 중심이고, 클리블랜드의 핵심인 르브론 제임스가 돌파 중심이라면 하든은 돌파, 3점 모두 해낼 수 있는 천재 볼핸들러이다. 휴스턴은 하든 외에도 다수의 볼핸들러의 아이솔레이션을 통한 공간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2017-18 시즌 시작에 앞서 천재 가드인 크리스 폴을 데려온 것이다. 폴 외에도 뛰어난 운동능력과 준수한 핸들링을 가진 에릭 고든, 그럭저럭 돌파력이 쓸만한 오스틴 리버스 등 다수의 볼핸들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트레버 아리자, P.J. 터커, 룩 음바 무테, 라이언 앤더슨, 제럴드 그린 등 190 후반~200 초반의 신장을 가진 다수의 3&D 선수 등을 기반으로 3점 라인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한다. 즉 아이솔레이션&스위치가 휴스턴 농구의 공격 기조이다. 특급 볼핸들러들이 유려한 볼핸들링 + 픽앤롤 등으로 수비를 무너뜨리고, 수비가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수비수들은 자신의 마크맨을 찾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휴스턴의 3&D 선수들은 스팟업 슈팅과 더불어 어지간한 미스매치는 이겨낼 포지션 범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비수들을 더욱 우왕좌왕하게 한다.

정통 센터 카펠라의 한계

사실 2019-20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클린트 카펠라라는 올드스쿨형 센터가 있었다. P.J. 터커가 198cm라는 사이즈에도 파워 포워드를 무리없이 볼 수 있던 것은 카펠라의 덕이 크다. 카펠라는 라인업에서 유일하게 3점슛을 던질 수 없는 선수이다. 하지만 맨발 208cm라는 당당한 체격과 함께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고, 정석적인 림프로텍팅이 가능하다. 그리고 발도 빠르기 때문에 속공 가담도 가능하고 현대 트렌드에 맞는 빅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휴스턴이 카펠라를 처분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는 바로 러셀 웨스트브룩과의 궁합 문제였다. 웨스트브룩은 OKC 시절 후반기부터 고질적인 슛셀렉션 문제, 지나친 열정(?)으로부터 비롯되는 턴오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시즌 평균 30-10-10을 달성할 정도의 에너지 레벨과 어시스트 능력, 전방위 득점력은 여전하다. 그리고 웨스트브룩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드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의 골밑 돌파 + 득점력이다. 크리스 폴과 러셀 웨스트브룩을 트레이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크리스 폴도 물론 뛰어난 가드이지만 폭발력이나 골밑 득점력, 겹겹히 쌓여있는 수비를 뚫고 갈 능력은 전성기에 비해 많이 감퇴한 상태였다. 휴스턴이 이미 헤비 볼핸들러인 제임스 하든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러셀 웨스트브룩을 데려온 것도, 둘의 롤을 적절히 분배하면 오히려 시너지가 날 수도 있다 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다지 선다 게임에 능한 하든은 지공을 맡고, 순간 속도와 골밑 득점력이 뛰어난 웨스트브룩은 속공을 전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든 또는 폴과의 투맨 게임을 준수하게 해내며 카펠라는 엘리트 볼핸들러와 합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약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든은 어디까지나 탑에서 공격을 시작하며 패스, 돌파, 스텝백 등의 다지선다를 강요하는 스타일이고 카펠라는 앨리웁 덩크, 픽앤롤에서의 롤맨 등의 역할만 하면 됐다. 하지만 웨스트브룩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웨스트브룩도 투맨 게임에 능하지만 하든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다. 웨스트브룩은 하든과 같은 현란한 드리블보다는 엄청난 운동능력과 순간 속도를 살려서 드라이브하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뒷공간을 만들어서 돌파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게 공격시 카펠라가 맡아주었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카펠라는 준수한 픽앤롤 실력과는 별개로 실링 스크린, 즉 상대 수비수를 가둬놓는 플레이에 능한 선수가 아니다. 센터치고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 이하이기 때문에 재빠른 수비수들을 가둬두기 힘들고, 웨스트브룩은 여러 겹의 수비수들을 힘겹게 뚫어야 하기 때문에 돌파 부담이 과중된다. 그러한 이유로 휴스턴은 과감히 팀내 유일한 주전급 센터인 클린트 카펠라를 포기했다. 그리고 4각 트레이드를 통해 전방위 수비수인 로버트 코빙턴을 데려왔다.

4각 트레이드를 단행한 휴스턴

4각 트레이드에는 휴스턴 외에 미네소타, 애틀랜타, 덴버가 껴있다. 전체적인 트레이드는 무척이나 복잡하지만, 휴스턴이 보내고 받은 선수들에만 집중하자면 다음과 같다. 클린트 카펠라와 네네 힐라리오, 제럴드 그린, 1라운드 픽 한 장을 보내고 로버트 코빙턴, 조던 벨, 미네소타의 2라운드 픽, 골든스테이트의 2024년 2라운드 픽을 받는다. 센터를 볼 수 있는 조던 벨을 데려왔지만 곧바로 웨이버했기 때문에, 사실상 대체할 정통 센터는 데려오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빙턴은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를 오가는 선수고, 센터를 맡기는 힘들다. 따라서 주전 라인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러셀 웨스트브룩 - 제임스 하든 - 에릭 고든 - 로버트 코빙턴 - P.J. 터커

맨발 신장이 2m조차 되지 않는 터커가 센터를 맡는 말도 안되는 라인업이 성사된 것이다. 이에 일부 농구 커뮤니티 유저들은 "센: 센터는 터: 터커다"라는 2행시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만기 계약자인 그린과 네네를 처분하고, 리그 최상급 수비수인 코빙턴을 받아온 결단력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코빙턴은 2018년 NBA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될 정도로 수비력을 인정받는 포워드이다.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를 오가는데, 신장은 201cm로 평범하지만 218cm라는 긴 윙스팬과 빠른 사이드스텝, 손질 등을 바탕으로 정상급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3, 4번을 모두 무리없이 마크할 수 있는 범용성 외에도 팀 수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넓은 시야를 가진 덕에 팀 수비를 전두지휘하는 앵커로 활약할 수 있으며, 공간을 잡아먹으며 상대 팀의 공격을 힘겹게 한다. 또한 수비력 외에도 준수한 스팟업 슈팅력을 가지고 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5.8%로 준수한 편이며, 경기당 6.6개를 쏴서 2.4개를 넣으며 주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2021-22 시즌까지 연 1100만 달러 가량으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각광받았다. 덕분에 탱킹으로 전환한 미네소타에서 2019-20 미드시즌 가장 뜨거운 트레이드 매물 중 하나였다. 이런 솔리드한 선수를 데려왔다면 찬사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한 트레이드 칩이 카펠라였다는 점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카펠라를 처분했기 때문에 팀 내 정통 센터 역할이 가능한 선수는 노장 타이슨 챈들러와 NBA 경험이 적은 아이재아 하텐스타인이 전부이며, 그나마도 하텐스타인은 D리그에 대부분 머무르다가 끝내 방출당했다. 그리고 챈들러는 실제 경기에서는 거의 나오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플레잉 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 거기에다가 코빙턴도 파워 포워드가 최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빅맨 경험이 많은 터커가 풀타임 센터로 뛰게 되었다.

사실 터커를 센터로 쓰는 발상에 반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터커는 휴스턴에 입단한 2017-18 시즌 이후 파워 포워드 롤을 무리없이 맡아 왔으며,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에도 커다란 센터들을 괜찮게 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스탯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평균 득점은 7점 전후이고, 평균 리바운드도 6개 전후이다. 평균 34분 가량을 출전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선수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골밑에서 상대 빅맨과 경합을 하며, 헌신적인 무브를 선보이기 때문에 리바운드가 적은 것을 감안해야 한다. 상대 빅맨의 포스트업 또한 굵은 프레임을 바탕으로 잘 버텨내며, 손질이 빠르기 때문에 스틸 등으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리고 절대적인 득점 볼륨은 낮지만 양측 코너에서 쏘는 3점슛은 체감상 쏘면 들어가는 수준으로, 이번 2019-20 시즌에도 양측 코너에서 가장 많은 3점슛을 성공한 선수가 터커이다. 그러나 이 선수가 센터를 봐야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카펠라는 올 시즌 기준 평균 13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주는 최상급 리바운더였고, 터커가 경합을 하더라도 림을 맞고 튕겨나온 공을 쓸어담을 수 있는 선수이다.

그러나 이제는 리바운드를 쓸어담는 역할을 터커 본인이 해야한다. 코빙턴의 리바운드 능력은 경기당 평균 6개 전후로 파워 포워드 치고는 평범하며, 고든 또한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하든과 웨스트브룩은 동포지션 대비 최상급 리바운더들이지만 어디까지나 가드이다. 본인들이 슈팅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리바운드 롤을 전문적으로 시키기는 힘들다. 센터를 터커가 맡는 라인업에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 라인업을 구성한 이유는 앞에서 누누히 이야기해온, 스위치 디펜스와 3점 라인 공략을 위해서이다.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휴스턴의 주전 라인업은 웨스트브룩이 1번, 하든이 2번, 고든이 3번, 코빙턴이 4번, 터커가 5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비 시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러한 포지션 구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웨스트브룩과 터커는 자신의 포지션을 수비하지만, 제임스 하든은 의아하게도 가드로서 빅맨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다. 매년 1.5개 이상의 스틸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가드 수비를 하며 패싱 레인을 끊는 등의 플레이에 능숙할 것 같지만, 그의 스틸은 대부분 빅맨을 상대하며 기록한다. 가드를 수비하기에는 사이드 스텝이 느리고, 스피드도 평범하기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 헤비 볼핸들러를 맡아온 그의 특성 상 에너지 레벨의 한계로 제대로 뛰지 않는 경우도 잦다. 하지만 몸의 프레임이 매우 굵고 버티는 힘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그의 수비력은 오히려 빅맨을 상대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포스트업을 하는 빅맨의 뒤에 달라붙으면 빅맨은 밀고 가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의 손질에 당하기 쉽다. 즉 하든은 스위치 디펜스에 매우 적합한 수비수이다. 또한 고든은 전반적으로 뛰어난 수비수는 아니지만 사이드 스텝이 빠르고 힘이 좋기 때문에 1~3번까지 커버 가능하며, 코빙턴 또한 3~4번을 무리없이 마크할 수 있다. 웨스트브룩도 1~2번을 맡는다. 즉 앞서 말한 스위치 오펜스&디펜스를 구현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 바로 휴스턴이다. 상대가 픽앤롤로 미스매치를 만들더라도 버텨낼 수 있으며, 역으로 공격 시에도 미스매치를 통해 공격 실패를 유도하는 것도 무력화할 수 있다. 슈팅과 골밑 득점에 모두 능한 엘리트 빅맨(ex) 앤서니 데이비스,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 칼 앤서니 타운스 등)을 만나지 않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어쩌면 휴스턴 식 로스터의 원조, 불스 왕조

볼핸들러 중심의 농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수비에 있어서는 불스 왕조와 휴스턴이 닮은 점이 많다. 불스 왕조의 주전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론 하퍼 - 마이클 조던 - 스카티 피펜 - 데니스 로드맨 - 룩 롱리

하지만 주전 라인업만큼이나 자주 가동된 라인업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론 하퍼 - 마이클 조던 -  스카티 피펜 - 토니 쿠코치 - 데니스 로드맨

즉 사이즈가 있지만 느리고 공격에서의 역할이 제한적인 롱리를 빼고, 다재다능하며 BQ가 높은 포워드인 쿠코치를 넣는 라인업이다. 당시 쿠코치는 불스의 핵심 식스맨이었고, 실제로 1996년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한다. 이 라인업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 멤버들의 신장이다. 론 하퍼는 데뷔 시즌 평균 20득점을 넘긴 스코어러 형 슈팅 가드였지만, 이후 득점력이 떨어지고 수비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전환한다. 조던, 피펜, 로드맨은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굳이 설명하자면 조던은 1~3번, 피펜은 2~4번, 로드맨은 과장 좀 해서 1~5번까지 막을 수 있는 역대급 수비수들이다. 마지막으로 쿠코치는 211cm라는 센터급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골밑에서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대신 컨트롤타워 역할이나 전방위 슈팅 등 소프트한 플레이에 능했다. 수비력은 평균 이하 였지만 3~4번과 매치업될 수 있었다. 즉 쿠코치를 제외한다면 모두 신장이 190 후반 ~ 200 초반인 선수들로 라인업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히는 플레이에 능했기 때문에, 미스매치 되더라도 무리없이 버텨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이 짠물 수비가 바로 불스 왕조의 쓰리핏을 견인한 주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농구 계의 혁명을 선도하다

여전히 우려 섞인 시선이 많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휴스턴의 혁신적인 스몰 라인업은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휴스턴처럼 극단적으로 스페이싱만을 추구하는 팀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이다. 늘 빅맨 중 최소 한 명은 골밑을 지킬 수 있는 선수가 해왔고, 아니더라도 백업 중에는 전통적인 역할의 빅맨이 있었다. 그러나 타이슨 챈들러마저도 사실상 전력 외인 상태기 때문에 전무후무한 정통 센터가 없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휴스턴이 약팀이 아니고, 오히려 파이널 우승을 노릴 수준의 강팀이라는 점이 더욱 시선을 모은다. 제임스 하든과 러셀 웨스트브룩이라는 슈퍼스타 볼핸들러들이 팀을 이끌고, 나머지 선수들도 그들의 조력자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즉 휴스턴의 실험적인 로스터 구성은 단순히 실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진지하게 우승을 향해 구성된 라인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재는 레이커스, 클리퍼스, 너기츠, 재즈 등에 밀려서 5위에 머물러 있지만 순위가 전부는 아니다. 동서부를 가리지 않고 강팀들을 여러번 잡았으며, 밀워키나 레이커스 같은 우승 후보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강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슈퍼스타들, 일명 "재능"의 역할이 크다. 덴버가 지난 시즌 2위에 이어서 올해 또한 3위를 달리면서도 우승 후보로 거론이 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비록 니콜라 요키치가 올 NBA 퍼스트팀을 수상하며 슈퍼스타급 선수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다른 슈퍼스타들과 비교하자면 폭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팀도 전반적으로 특정 선수 위주라기보다는 협동력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더욱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하든과 웨스트브룩은 모두 MVP 수상 경력이 있는 선수이고, 플레이오프에서의 빡빡한 상대 수비를 뚫고 변수를 창출할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슈퍼스타급 재능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때문에 MVP 출신 가드 듀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필자 또한 휴스턴의 선전을 기대하는 바이다.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실험적인 라인업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하고 만약 우승을 한다면 큰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7월 31일부터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재개될 NBA 시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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