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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TMC 트리오 이야기

NBA 넋두리

by REDIAN 2020. 7. 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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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패스&슈팅 집단 중 하나인 2010년대의 골스는 파이널 진출 5회, 파이널 우승 3회라는 업적을 이뤄내며 2010년대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했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16승 1패를 기록한 2016-17 시즌의 골스는 또다른 역대 최강팀 중 하나인 1995-96 불스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케빈 듀란트를 필두로 한 역대급 슈터들과 드레이먼드 그린, 안드레 이궈달라, 숀 리빙스턴, 케본 루니 등의 언성 히어로들의 조화는 공간 창출과 유기적인 패스 게임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려 놓았다. 하지만 NBA가 국내에서 대중화되면서 2010년대의 골스는 대중들에게 많은 기억을 남겼지만, 그 이전의 골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윌트 체임벌린이 커리어의 초기를 보내고, 1990년대 초반 RUN TMC 트리오를 앞세워 극한의 공격 농구를 추구한 팀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RUN TMC 트리오를 조명하고, 그들이 추구하던 농구의 방향과 결성과 해체 과정 등을 자세히 서술하고자 한다.

1. 결성

RUN TMC는 당시 인기를 끌던 힙합 그룹인 RUN DMC를 조금 변형하여 만든 말이다. 각각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크리스 멀린의 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RUN TMC 중 선수 생활을 가장 일찍 시작한 선수는 크리스 멀린이다. 멀린은 1992년 드림팀 1기에 뽑혔을 정도로 80년대에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였다. 1985-86 시즌에 데뷔한 그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88-89 시즌에는 커리어 첫 올스타에 선정된다. 1988-89 시즌은 트리오의 일원인 미치 리치몬드가 팀에 합류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ROY를 수상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989-90 시즌에는 마지막 조각인 팀 하더웨이가 합류한다. 마찬가지로 루키 시절부터 준수한 활약을 보인 하더웨이는 평균 14.7득점과 8.7어시스트를 기록한다. 비록 해군 의무복무 2년을 마치고 돌아온 괴물신인 데이비드 로빈슨에 밀려 ROY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해였다면 신인왕으로 선정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스탯이었다. 이렇게 멀린부터 리치몬드, 하더웨이까지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트리오가 결성되고 하더웨이의 2년차 시즌부터는 본격적인 공격 농구의 서막을 알린다.

2. 전성기

하더웨이의 소포모어 시즌인 1990-91 시즌. 당시 개막전을 덴버 너기츠와의 원정 경기로 치렀는데, 162-158이라는 안드로메다 급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자신들의 화끈한 공격 농구를 전국에 알린다. 당시 골스의 감독은 후에 다시 골스의 감독으로 복귀하기도 하는 돈 넬슨이었는데, 런앤건과 아이솔레이션 등 공격적인 농구를 장려하는 인물이었다. (후에 다시 골스의 감독을 맡을 때에도 배런 데이비스, 스티븐 잭슨, 제이슨 리차드슨, 몬타 엘리스 등 개인전술 능력과 운동능력이 뛰어난 가드를 키우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물론 수비는 개나 줘버렸기 때문에 맞불이 실패하면 탈탈 털려버렸다.) 돈 넬슨은 이따금 3가드 - 2스윙맨으로 구성되는 기상천외한 스몰 라인업을 가동하기도 했다. 하더웨이 - 리치몬드 - 멀린으로 이어지는 1 2 3 번에 동유럽에서 온 사루나스 마루셸루니스, 스포와 파포를 넘나들던 로드 히긴스로 4 5번을 채우면서 극단적인 공격 농구를 추구하였다. 가장 포워드 성향이 짙은 히긴스 마저도 경기당 3점슛을 2~3개 이상 시도하는 스트레치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였고, 내외곽을 그야말로 폭격했다. 다만 이중에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업템포 기반 화력 농구가 실패할 경우 꼼짝없이 대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0-91 시즌 팀 골스는 전체 2위인 평균 116.2득점, 또 전체 2위인 평균 115실점을 기록하며 많이 넣고 많이 내주는 농구를 보여주었다.

정규시즌은 44승 38패라는 플레이오프 진출팀 치고 눈에 띄지는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멀린, 리치몬드, 하더웨이, 마르셸루니스로 이어지는 가드 - 스윙맨들의 공격력이 대폭발하며 55승을 거둔 스퍼스에게 업셋을 일궈낸다. (데이비드 로빈슨이 이끌었던 스퍼스는, 이후로도 플레이오프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로빈슨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만난 레이커스는 강한 상대였다. 매직 존슨이 1차 은퇴를 선언한 시즌이기도 한 1990-91 시즌에는 매직 존슨을 필두로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등 강력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수비에서의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고, 경기당 평균 122.4점을 내주며 2라운드에서 탈락한다.

3. 해체

그리고, 1990-91 시즌이 끝난 이후 돈 넬슨 감독은 공수의 밸런스를 위해 RUN TMC 트리오를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제대로 된 빅맨이 없던 팀 사정상 미치 리치몬드를 트레이드 하고, 대가로 1991 NBA 드래프트에서 신인 빅맨을 뽑기로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1991 드래프트의 상위픽들이 미궁에 빠지며 트레이드가 난감해진다. 당시 최상위권 유망주들은 래리 존슨, 스테이시 오그먼(KCC 감독 맡으신 그 분 맞다), 디켐베 무톰보, 스티브 스미스 등의 4학년 선수들과 알론조 모닝, 빌리 오웬스 등의 3학년 선수들, 샤킬 오닐과 케니 앤더슨 등의 2학년 선수들이 있었다. 4학년 선수들은 졸업을 하는 관계로 당연히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상황이었지만, 특히 NCAA를 박살내고 있던 알론조 모닝과 샤킬 오닐 등은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결국 해당 시즌 올해의 대학선수로 뽑히기도 한 샤킬 오닐은 대학에 남기로 결정했고, 알론조 모닝 또한 감독의 설득 끝에 대학에 남게 된다. 따라서 언더클래스 선수(4학년이 아닌, 학교를 중퇴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 중 최대어는 시라큐스 대학교의 3학년 빌리 오웬스였다. 그 외에 케니 앤더슨 또한 NBA 진출 선언을 한다. 

당시 1픽이 누구가 되야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고 왔고, 이미 웨이트가 완성된 래리 존슨을 추천했다. 그러나 존슨에 비해 현재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다재다능함 덕분에 실링을 위주로 본다면 단연 오웬스였다. 결국 1픽을 가졌던 살렷은 보수적인 입장을 따라가 래리 존슨을 택한다. 하지만 2번 픽에서 이변이 발생한다. 2픽으로 오웬스를 지명할거라 예상되었던 뉴저지 네츠가 홈보이인 케니 앤더슨을 지명했고, 자연스레 오웬스는 3픽까지 내려온다. 그리고 3픽을 가졌던 킹스는 당연하게도 오웬스를 택한다. 덴버가 가지고 있던 4픽으로는 디켐베 무톰보를 지명했고, 마이애미가 가지고 있던 5픽으로는 스티브 스미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오웬스를 지명한 킹스는 고민에 빠진다. 이전 해에 뽑은 유망주 라이오넬 시몬스와 오웬스의 포지션이 겹쳤기 때문이다. 둘 다 전형적인 스몰 포워드 롤을 소화하는 선수였고, 둘 중 하나는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 상황에서 돈 넬슨의 워리어스가 달콤한 제안을 한다. 빌리 오웬스를 워리어스로 보내는 대신 미치 리치몬드와 두 명의 선수를 킹스로 보내는 트레이드였다. 결국  트레이드는 성사되었고, 리치몬드 대신 신인 오웬스가 빈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과포화된 가드-스윙맨 뎁스였기 때문에 넬슨이 데려와야 하는 선수는 분명 빅맨이었지만, 빅맨 대신 스몰 포워드에 가까운 오웬스를 또 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넬슨은 오웬스를 빅맨 롤로 기용한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1991-92 시즌 내내 파워 포워드 롤로 활약한다. 나름대로 정리된 포지션 덕분인지 워리어스는 55승 27패로 전체 4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크리스 멀린은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 NBA 퍼스트팀에 선정되었으며, 마르셸루니스 또한 식스맨으로 뛰며 평균 18.9득점을 기록한다. 

※ 골스의 팀 역사를 되짚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트리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 유일하게 3명의 선수가 평균 20득점 이상 기록한 팀이 1990-91 워리어스이고(크리스 멀린,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그 이후 최초이자 21세기 처음으로 3명의 선수가 평균 20득점 이상 기록한 것도 2007-08 워리어스이다(배런 데이비스, 몬타 엘리스, 스티븐 잭슨). 그리고 그 이후 처음으로 해당 기록을 달성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2016-17 워리엇스이다(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클레이 탐슨). 이렇듯 공격 트리오와 연이 많은 팀이지만, 이 중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10년대 골스 왕조 뿐이다. 이전 2번은 모두 공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수비가 무너졌지만 골스 왕조의 경우 유기적인 패스 게임과 더불어 강력한 수비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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